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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의 정치경제학

행개련 0 1664

지방분권의 정치경제학


정용덕(행개련 상집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유월을 맞아 떠오르는 대표적인 계절의 이미지는 전쟁과 보훈 그리고 지방자치다. '6·25 한국전쟁'의 어두움과 현충일의 숙연함, 그리고 주로 유월에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연상되는 활달함이 더불어 어우러지는 초여름이다.

특히 올해는 30년간 '유보'되었던 지방의회가 재구성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자치단체장의 직선제 실시로는 16주년이다. 그러나 중앙이든 지방이든 대의민주주의의 본산이 의회인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상징적인 면에서 '지방자치 부활 20주년'을 기리기에 손색이 없다. 1987년 초 런던에서 개최된 비교지방행정 세미나에서 지방자치가 없던 당시 한국의 상황이 부끄럽고 곤혹스러운 가운데 발표해야만 했던 필자로서는 감개무량하기까지 하다.

지방자치 부활 20년 아직 분권은 멀었다
지방자치 부활 20주년을 맞는 지금 새삼스레 2004년 초 부산에 소재한 대학의 행사에 참석했을 때 일이 생각난다. 점심시간이 되어 좀 더 자유로이 한담을 하던 중에 대구에 있는 대학의 행정학 교수 한 분이 불쑥 "중앙정부의 모든 부처들을 여러 지역으로 각각 분산 배치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그분은 학문적으로나 인품에 있어서나 필자를 포함하여 동학들로부터 존경 받는 학자였다. 각 부처를 전국으로 분산 배치하면, 국무회의를 비롯하여 부처 간에 정책 협의와 조정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나라의 지나친 수도권 집중에 대한 비수도권 주민들의 정서를 그분이 간접 화법으로 대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래서 각 부처들의 분산 배치보다는 중앙-지방 관계를 획기적으로 분권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가라는 의견을 조심스레 내 본 기억이 난다.

지난 20년 사이에 지방자치 실시와 더불어 지방분권도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론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중앙-지방 관계는 여전히 중앙집권적이다. 사무, 재정, 인력 등의 배분에 관한 통계 수치 면에서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하여 많은 OECD 회원 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지방분권 수준은 아직도 낮다. 더 심각한 문제인 실제 의사결정 면에서의 지방분권화는 갈 길이 요원하다.

우리나라에서 지방분권화를 어렵게 만드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우선 전통적인 문화나 사회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비롯하여 오랜 동안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경험이나 인종 면에서의 동질성 등은 모두 한국인들로 하여금 지방자치 개념에 익숙하기 어렵도록 작용해 온 거시적 요인들이다. 세계 '냉전'과 더불어 시작된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와 국가 주도로 '압축 산업화' 정책을 추진한 것도 중앙정부 수준으로 모든 자원을 결집시켜 운용하는 것에 익숙하도록 만들었다. 중앙정부의 경제관료들이 보이는 재정분권화에 대한 거의 알레르기 수준의 반응은, 경제정책은 전국 수준에서 추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고 믿는 일종의 국가주의(etatiste) 정서에 그 뿌리가 있다. 여기에 더하여 조직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관료정치와 '지역구를 관리'해야 하는 분들의 의회정치 또한 반(反)분권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분권 주창자들, 절호의 기회 놓친 적 있어
미시적으로는 현실 정치과정에서의 정당 간 권력배분 양상도 지방분권화에 영향을 미친다. 즉 중앙과 지방 모두에서 동일 정당이 권력을 장악하는 경우에 분권 개혁을 추진하기가 유리하다. 바꾸어 말하면, 중앙 수준에서 집권한 정치집단이 그들과는 다른 정치집단이 집권한 지방자치단체들에 권한을 이양하기를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오랜 기간 대의민주주의를 실시해 온 영국에서도 보수당과 노동당이 중앙과 지방 가운데 어디를 장악했는가에 따라 각자 겉으로 표방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하게 그때그때 중앙-지방 관계에 관해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 한 예가 될 것이다. 권력이란 '떡 주듯이'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속어를 떠올리게 하는 현상이다.

한국에서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후 중앙의 행정부와 의회 모두에서 집권에 성공한 정당이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까지도 장악했던 시기가 더러 있었다. 2007년 12월 제17대 대선에 이어 이듬해 4월 제18대 총선까지 연거푸 승리한 한나라당이 2010년 6월 제5회 지방선거에서는 참패하기까지의 2년 남짓한 시기가 가장 최근의 예다. 지방분권의 주창자들로서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출처: 부산일보 2011년 6월 6일 <부일시론>
매일신문 동일자 <계산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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